거대한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영화는 드물다. 2022년 A24가 선보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제목처럼 모든 것을 담으려는 야심 속에서 기적적으로 균형을 이루었다. 이 영화는 양자역학적 상상력과 중국계 이민 가정의 일상,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을 결합해 전례 없는 서사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데뷔작부터 독특한 감성을 보여준 ‘다니엘스’(다니엘 콴, 다니엘 슈나이너트) 감독 듀오는 이번 작품에서 장르적 경계를 넘나들며, 멀티버스라는 과감한 설정을 통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영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배우들의 열연과 철저한 제작 과정을 통해 영화계의 지형을 바꾸었다. 본 리뷰는 이 작품이 어떻게 멀티버스를 통해 가족과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다양한 영화언어를 혼합하여 새로운 미학을 만들며, 전 세계적인 찬사와 아시아계 대표성 확장에 기여했는지 살펴본다.
멀티버스와 존재의 질문을 풀어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 에블린 왕이다. 그녀는 남편 웨이먼드와 함께 20여 년 전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도망쳐 결혼했지만, 이제는 이혼 위기에 처해 있고, 노령의 아버지가 들이닥치고, 딸 조이와는 성적 지향과 미래에 대한 시각 차이로 충돌한다. 아버지의 환영 행사와 국세청 세무조사가 겹친 날, 에블린은 탁자에 쌓인 영수증 사이에서 삶이 무너지는 듯한 압박을 느낀다. 이때 갑자기 남편의 몸이 낯선 존재에게 점령되며, 그녀는 자신이 수없이 많은 평행우주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우주에서 온 ‘알파-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멀티버스의 존재와 이를 넘나드는 기술을 알려 주며, 에블린이 모든 우주의 실패한 버전이기에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설득한다. 이렇게 영화는 주인공이 다중 우주를 오가며 각기 다른 삶의 가능성을 경험하는 모험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영화 속 멀티버스 개념은 단순한 서사 장치가 아닌 존재론적 질문의 플랫폼이다. 에블린은 다른 우주에서 무술 고수이자 배우로 성공한 자신, 핑거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기괴한 인류가 존재하는 우주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자신, 돌로 변해 말 없이 광야를 바라보는 자신을 만난다. 이러한 시퀀스는 선택과 우연, 후회와 열망의 무한한 조합을 상징하며, 관객에게 자신의 삶에서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지를 묻는다. 영화 속 빌런 ‘조부 투파키’는 사실 조이의 또 다른 버전으로, 무한한 우주를 경험한 끝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 존재다. 그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에브리싱 베이글’이라는 거대한 도넛 모양의 블랙홀을 만들어 우주와 함께 자신을 소멸시키려 한다. 이 극단적 허무주의에 맞서 에블린이 발견하는 해답은 웨이먼드의 ‘친절’이다.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도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작은 선의를 실천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영화의 감정적 핵심을 이룬다. 결말에서 에블린은 조이가 자신과 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녀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며, 아무리 많은 선택지가 있더라도 중요한 것은 사랑과 연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또한 이민자 가족의 세대 간 갈등과 화해를 섬세하게 다룬다. 에블린은 중국 문화의 전통과 미국 사회의 압력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어하며, 딸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이는 그런 어머니를 답답해하면서도 그녀의 사랑을 갈망한다. 두 사람은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여정 속에서 서로의 상처와 소망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놓아주는 동시에 끈끈하게 연결되는 방식을 배운다. 이러한 서사는 아시아계 이민자뿐 아니라 전 세계의 부모와 자녀가 직면하는 세대 차이와 기대, 사랑과 독립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거대한 SF 설정 속에서도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이야기를 중심에 두어, 관객이 주인공들의 감정에 몰입하도록 돕는다.
장르 혼합과 연출: 복합적 영화언어의 향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장르와 미학을 한데 엮는 대담함이다. 다니엘스는 영화 제작을 준비하는 데 10년을 쏟았고, 홍콩 영화의 거장 왕가위, 어린이책, 비디오 게임 등 다양한 예술적 영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결과 영화는 초현실 코미디, 공상과학, 판타지, 무술,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카메라는 롱테이크와 퀵 컷, 슬랩스틱과 슬로 모션, 색다른 화면비와 현실과 애니메이션을 병치시키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예를 들어, 핸드백 대신 허리춤에 찬 웨이먼드의 파우치로 펼치는 격투 장면은 고전 홍콩 액션을 연상시키고, 핫도그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며 사랑을 나누는 우주에서는 실소가 터지지만 동시에 인간 관계의 다양성을 암시한다. 또 돌로 변한 두 존재가 자막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아무런 효과음도 없는 가운데 오히려 깊은 감동을 준다.
이처럼 복잡한 연출을 가능케 한 것은 창작진의 집요한 노력과 독립영화적 정신이다. 제작은 2018년에 공식 발표되었고, 촬영은 2020년 1월부터 3월까지 진행되다가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다. 감독들은 전문 시각효과 회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8명의 소규모 팀을 꾸려 후반 작업을 직접 진행했다. 이들은 상업용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수백 개의 시퀀스를 만들고 멀티버스의 다채로운 시각 효과를 구현했다. 쿠아론의 〈로마〉가 자연광과 로케이션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다니엘스는 초현실적 비주얼과 과감한 색채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렸다. 무술 장면은 현장에서 배우들의 합을 최대한 활용하여 신속하게 촬영되었고, 특히 키트파우치 격투는 하루 반 만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독립적인 제작 방식은 할리우드 대작과는 다른 신선한 에너지를 전달하며, 많은 관객에게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가능성”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배우들의 헌신적인 연기 또한 영화의 성공을 뒷받침한다. 미셸 여는 주인공 에블린을 통해 액션과 코미디, 드라마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40년 경력의 극대값을 보여준다. 그녀는 현실 세계에서 지친 가장으로, 다른 우주에서는 쿵푸 스타와 오페라 가수로, 또 돌로 변한 존재까지 연기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웨이먼드 역의 키 호이 콴은 어린 시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이후 오랜 공백을 깨고 복귀해, 멀티버스의 다양한 버전을 소화하며 관객과 비평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이 역의 스테파니 수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절망을 느끼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조부 역의 제임스 홍과 세무관 역의 제이미 리 커티스는 감초 역할을 넘어 멀티버스의 코믹함과 음울함을 균형 있게 전달한다. 감독들은 배우들에게 각각의 우주의 변주된 캐릭터를 연기하도록 지도하면서도, 그들이 즉흥적으로 감정을 더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냈다.
음악 역시 여러 세계를 가로지르는 끈이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실험적 밴드 손 럭스가 맡아 2년 이상 작업하며 100여 개의 테마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동양적인 멜로디와 전자음, 락과 힙합, 클래식 등 여러 장르를 혼합하여 영화의 격정적 리듬을 반영했다. 특히 “클라이맥스 버스킹” 장면에서 석연치 않은 코드 진행과 절정의 멜로디가 병렬적으로 흐르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혼돈과 조화를 음악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장르적 혼합과 혁신적 연출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단순한 서사 이상의 시청각적 경험으로 승화시킨다.
비평적 찬사와 아시아계 대표성의 확장
이 영화가 전 세계적 화제작이 된 데에는 작품성뿐 아니라 그 의미가 크다. 2022년 3월 남부 텍사스의 SXSW에서 첫 공개된 뒤, 영화는 북미 한정 상영을 거쳐 입소문을 타며 상영관을 확대했고, A24 역사상 최고 흥행작으로 올라섰다. 제작비 1400만~25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전 세계 수익은 1억 4천만 달러를 넘어섰다. 평단의 반응도 뜨거웠다. 리뷰 집계 사이트에서는 90%가 넘는 평점과 평균 8점대 후반의 점수를 기록했고, 메타크리틱에서도 80점 이상으로 “전폭적 찬사”를 받았다. 비평가들은 미셸 여의 연기를 경력 최고로 평가하며, 그녀가 액션과 감정 연기를 모두 소화하는 능력에 놀라워했다. 인디와이어는 영화가 “슬랩스틱과 천재성이 어우러진 오르가즘 같은 작품”이라 찬양했고, 한 신문은 “장르적 혼돈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 친절이라는 메시지”를 찾아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일부 평론가는 과감한 스타일과 이야기의 복잡성에 불만을 제기했지만, 이는 오히려 작품의 실험성과 대담함을 증명하는 반론으로 읽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아시아계 영화인들에게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2023년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작품은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편집상까지 7관왕에 오르며 역사를 새로 썼다. 미셸 여는 아카데미 사상 첫 아시아계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기록되었고, 키 호이 콴 역시 40년 만에 돌아와 남우조연상을 차지했다. 제이미 리 커티스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오스카를 품었으며, 다니엘스는 젊은 나이에 감독과 각본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이밖에도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 영국 아카데미, 미국배우조합상 등 주요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연기상을 휩쓸었고, 배우 앙상블 상은 아시아계 출연진이 주축이 된 작품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이러한 수상은 할리우드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넓히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영화는 아시아계 가족의 이야기를 멀티버스라는 보편적 서사 속에 녹여내어, 특정 문화적 배경을 넘어서면서도 고유한 경험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는 이후 등장할 다양한 소수자 서사 영화들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비평적 찬사와 상업적 성공은 영화의 철학적 메시지가 넓은 공감을 얻었음을 입증한다. 작품은 혐오와 혼돈이 가득한 시대에 “친절하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말을 던지며, 허무주의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사랑과 연대를 제시한다. 또한 세대 간 갈등과 정신 건강, 이민자 정체성, 문화적 혼종성 등 복잡한 주제를 담백하게 다루어, 관객이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심지어 ‘에브리싱 베이글’과 ‘구글리 아이’ 같은 유머러스한 소품도 불교와 도교의 음양 사상, 인간주의 철학과 연결돼, 동양철학을 서양문화에 쉽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영화는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기도 하다. 짧은 순간 등장하는 “라카쿤이” 캐릭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패러디하고, 멀티버스 구조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클리셰를 뒤틀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작품은 스스로를 해체하고 또 재창조하는 유희를 통해 관객에게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후, 많은 평론지와 기관이 이 작품을 21세기 최고의 영화 목록에 올렸다. 롤링스톤은 역대 최고의 공상과학 영화 순위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뉴욕타임스는 2024년 발표한 21세기 영화 100선에서 이 작품을 77위로 선정했다. 이러한 평가는 영화가 단순한 유행작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지속적으로 회자될 작품임을 예고한다. 감독과 배우들은 다음 작품에서 어떤 도전을 이어갈지 기대를 모으고 있으며, 관객들은 영화에서 제시된 질문과 답을 각자의 삶 속에서 계속 탐색하고 있다. 이처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영화 언어의 확장과 아시아계 서사의 도약을 한꺼번에 이루어낸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무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모험과 가족의 사랑을 결합해, 관객에게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했다.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허물며 영화의 가능성을 넓힌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삶의 의미를 묻는 모든 이에게 “친절과 사랑이 가장 강한 힘”이라는 진실을 다시 일깨워 준다.